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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레네의 작품은 사실 본 적이 없는데,
온 투어의 마튜 아멜릭(← 클릭) 나온다고 해서 관심이 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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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명의 후랑스 배우들이 본인의 실명으로 출연한다.
이들은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극작가 앙투완의 연극 '에우리디스' (Eurydice, 에우리디케)에 출연한 적 있는 배우들.

그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그가 생전에 연출을 의뢰받은 젊은 극단의 '에우리디스' 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곧 그들 각자가 맡았던 역할에 빠져들어 대사를 읊기 시작,
영상 속 '에우리디스'와 현실..이라고 하기에도 모호한 그들만의 '에우리디스'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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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공간을 뛰어넘는 연출을 통해 그들만의 '에우리디스'를 상연한다.

연극이 진행되면서 처음에 자기 자리에 잘 앉아있던 배우들의 자리배치가 어떻게 바뀌는지,
살짝살짝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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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인공 '에우리디스'와 '오르페우스'를 각각 연기한 남녀배우 두 쌍은,
(영상 속 극단 내 커플까지 합치면 총 세 쌍!) 
번갈아가면서, 혹은 동시에 연기를 펼친다.

사실 이런 특이한 연출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내 깜냥으로는 모르겠고-_-
에우리디스 연극을 보러 온 느낌으로 열심히 구경했는데,

이게 참 재미있는 내용이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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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반해버린 젊은 커플의 앞뒤 안 가리는, 무모하게 불 붙은 사랑 이야기를,
20대, 30대(혹은 40대), 50대(혹은 60대) 커플의 모습을 통해 지켜보고 있으면,

여자나 남자나 나이 상관없이 똑같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말하기 어려운 과거를 숨긴 채 새로운 사랑에 몸을 맡기는 에우리디스는,
자신 앞에 나타난 이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되고 오래갈 수 있는지 못 미더워함과 동시에,
정작 그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실망할까 두려워 도망치려고 하고,

그래서인지 내내 완전 신경쇠약 걸린 여자처럼 불안하고 정신없음-_- 좀 짜증나는 스타일.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는 오르페우스는,
걱정하지마 내가 있잖아 류의 대사와 천진난만한 농담으로 철없이 로맨스를 이어가려다가,
그녀의 과거를 줏어듣고 의심과 질투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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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오르페우스가 완전 철없이 실실 쪼개면서,

"음 자기야 그러면 저녁거리 살 때 꽃도 좀 사와. 아 그리고 나 복숭아 짱 좋아함 *_*" 할 때,
얼척이 없었음 ㅋㅋㅋㅋㅋ 이럴 때 보면 진짜 남자들은 인터내셔널 다 똑같이 단순한 듯.

아니 지금 부모 버리고, 직장 버리고, 니만 따라온 여자애를 혼자 내보내면서,
그렇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복숭아 사다달라고 얘기할 때냐. 이 여자가 니 엄마냐 ㅋㅋㅋㅋ

더군다나 여자애는 완전 신경쇠약 걸려가지고 헛소리 주절대면서 눈물 짜던 와중인데 ㅋㅋ

뭐 오르페우스가 딱히 뭘 잘못했다기보다,
남자들은 어떤 상황을 인식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여자들이랑 다른 것 같다는 얘기.

여자들이 정말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걱정과 불안에 휩싸일 때도,
세상만사 별로 걱정이 없는 게 종특인 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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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매튜 아멜릭 간지 쩐다.

온 투어에서는 막 피폐해 진 망나니 연출가 역할로 수염도 기르고 그래서 몰랐는데,
이 영화에서는 레인코트 딱 걸치고 담배 피면서 눈 부라리는 카리스마.

13명 배우들 중에서 단연 돋보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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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영화의 마무리는 사실 여전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인데,
배우들이 묘지에 다녀오는 복장이나 이런 걸 보면 앙투완이 애초부터 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 뭐 누가 설명 좀 해 줬으면 좋겠다.

여튼, 
특이한 구성과 재미있는 연극 내용으로 눈 뗄 수 없이 집중해서 본 멋있는 영화였는데,
감독의 의도는 파악을 못 했다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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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게,
영화 평론가들이나 뭐 그런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보면 한 큐에 느낌이 팍 오는건가?


060113
@스폰지하우스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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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