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그녀는 영혜의 운명에 작용했을 변수들을 불러내는 일에 골몰할 때가 있었다. 동생의 삶에 놓인 바둑돌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헤아리는 일은 부질없었을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 나무불꽃, 채식주의자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리디북스에서 막 엄청 밀어주기도 했고 ro언니가 읽었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덩달아 읽어봄.


영혜가 갑자기 채식주의자...를 거쳐 거의 거식증에 가까운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는데, 이 과정을 처음엔 남편, 다음엔 형부, 마지막으로 친언니의 시선으로 적은 세 편의 연작 소설이 바로 이것이다. 


솔직히 처음엔 뭔가 다름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일갈 같은 건가, 이 여자가 채식주의자+페미니스트 같은 걸로 나오는건가 싶었는데, 그런게 전혀 아니고 이건 완전 어떤 트라우마의 발현 같은 엄청 어려운 건데, 이해가 잘.. ㅠ_ㅠ


이런 류의 모호한(?) 명확한 기승전결을 보여주지 않는(?) (다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는데) 글을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눈에 확확 들어오는 편은 아니었던 듯. 길지도 않은 소설을 꽤 오래 붙들고 읽었다. 


그나마 남편의 입장에서 쓴 채식주의자는 남편 입장에 빙의해서 좀 잘 읽혔는데, 형부가 말하는 몽고반점 쯤에서부터 점점 정신을 잃기 시작하다가, 친언니의 나무불꽃을 읽을 때 쯤에는 앞뒤 지나간 얘기 흐름도 조금씩 정리되고 뭔가 오히려 주인공은 이 언니가 아닌 가 싶을 정도로 와닿는 부분도 있기는 함. 


뒤에 해설이 붙어있는데 해설은 소설보다 더 난해함 대체 뭐죠.



여튼, 나 책을 너무 가려 읽었더니 작가님의 위대한 작품을 잘 못 알아본 듯 하여 아쉬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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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개봉을 앞둔 영화가 있는 줄 알았다면 후기를 더 빨리 썼을텐데 늑장부리다가 이제서야 올림. 


본의 아니게 은둔생활을 하게 된 지난 몇 주간 생각 없이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오베라는 남자를 보게 되었다. 


왠 블로거(이자 칼럼니스트)가 올리던 포스팅이 인기가 많아져서 책으로 나왔다고 하니 슥슥 책장 넘겨가며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구매했는데, 사실 첫 장에 소개 된 오베라는 남자는 진짜 피곤한 스타일이고 필요 이상으로 화가 나 있는 사람이어서 심신의 안정과 자유와 평화와 사랑이 필요한 나에게 묘하게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바람에 실망할 뻔 했었다.


그러나 꾹 참고 두 번째, 세 번째장을 넘어가 본 건 잘 한 일.


아내를 잃고, 이제는 직장도 잃고, 삶의 이유 자체를 잃어버린 무뚝뚝한 고집쟁이 오베라는 남자가 새롭게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이야기랄까? 자기 부인을 만나기 전과 후의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 무뚝뚝한 로맨티스트가 겪는 하루하루를 차근차근 따라가다보면, 결국 그의 츤츤데레데레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 


약간 쓸데없이 멋부리는 듯한 문체 때문에 초반의 짜증이 100% 사라지지는 않지만, 끝으로 갈 수록 그에 대한 연민과 애정과 관심이 솟아나며, 사는 게 뭔가 생각하게 되는 그런 글.



p.s. 영화 예고편에서 본 오베라는 남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여리여리 착하게 생겨서 흐음- 이랬는데, 생각해보니까 책 표지에 저렇게 자기들 멋대로 주인공 얼굴을 그려버리는 건 반칙인 것 같다. 내가 상상한 오베라는 남자는 은근히 저런 백발의 흰 수염 남자로 정해져 버림..!


p.s 2 아부지가 영화 보셨는데 고양이가 그렇게 귀엽다고 +_+


p.s 3 네이버에 있는 저자 인터뷰를 읽었는데, 프레드릭 배크만은 현대차를 몬다고 한닼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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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사물의 즐거운 면을 보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 모든 것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뜻밖에 최고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행복에서는 유머가 나오지 않는다. 행복한 상태에는 재미있는 요소가 전혀 없다. 유머는 슬픔으로부터 나온다.


#.
시간 때우려고 홍익문고 들어갔다가 예뻐서(...!) 구매한 책 ㅎㅎ 

예전에 어쩌다가 우리 집에 굴러들어온 피너츠 단행본 1권을 진짜 지겹도록 읽고 또 읽었던 기억도 있고, 스누피 마을 게임도 엄청 열심히 했고 ㅋㅋ 해서 왠지 정감 가는 마음에 집어들었는데,

찰스 슐츠 아저씨가 이런 저런 기회들을 통해서 끄적이거나, 기재하거나, 발표한 글들을 모아둔 에세이였다. 


#.
읽다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됨. 

일단 찰스 슐츠, 스누피를 탄생 시킨 이 위대한 작가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는거 ㅋㅋㅋㅋㅋㅋ 글 읽다보면 몇 번이나 죽은 사람 취급 당하는 본인의 얘기가 나옴 ㅋㅋㅋㅋㅋ 아 왠지 너무 오래 되서 꼭 죽었을 것만 같잖아.

그리고, 이 분은 절대 피너츠를 다른 사람 손에 넘기지 않을거라는거, 그러니까 이 분이 진짜로 돌아가시면, 그 땐 피너츠도 바이바이. 

근데 이 와중에 이분은 자기 코믹스트립 제목이 피너츠 라는 걸 너무 싫어한다는거 ㅋㅋㅋ 

또, 일간지 한 켠에 자리한 코믹스트립으로서의 피너츠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알 수 있는 애독자들의 각종 리액션 일화들도 찾아볼 수 있고.

만화가로서 사는 법, 만화가로서 일하는 법 등 한 분야에 꾸준히 몸 담아 온 찰스 슐츠 아저씨의 다양한 노하우들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피너츠 캐릭터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곁들여 읽다 보면 나름 재미지다. 


#.
좀 읽다보면 아 이 아저씨 좀 피곤한 스타일인가- 싶을 때도 있긴 한데, 전반적으로는 매우 유쾌하고 장인정신 뛰어난 분이시라는거. 

소품집 처럼 귀엽게 읽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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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경우 현실주의자는 그
일을 그냥 내버려두지만, 낭만주의자는 그 소동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쫓겨 무언가 해명을 해야 한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나름 광고쟁이 언니를 두고 있어 저자가 대표로 있다는 bbtt를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발견하여, 아픈 머리 쉬일 겸 가볍게 읽으려고 산 책.

뭔가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는 상황을 하나씩 테마로 잡고, 거기에 해당하는 사례를 생각나는대로 모조리 대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뭔가 김난뭐 그 누가 쓴 2015년 트렌드 서적 같은 걸 읽는 기분이 떠나질 않고,

구석구석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현 정부에 대한 반대 성향이 드러나는 문구들은, 나와 같은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와 괜시리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정말 많은 곳에서 영감을 얻고,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정보를 접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노트를 같이 보는 것 같은 기분도 있었음.

위의 구절은 저자가 직접 쓴 게 아니고, 어디서 누가 쓴 글에 나오는 문구라고 옮겨준 걸 나도 옮겨온 건데,

나는 낭만주의자 쪽인데 쓸데없다고 하길래 아! 뭐! 왜! 이런 기분으로 적어둠.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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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이십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눈과 귀와 코를 고, 한 인간이 보편적인 인류의 한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나 충분한 시간이다. 결국 나는, 150미터의 대왕오징어를 15센티미터로 정정하는 인간의 기분 같은 것을, 이해하는 인간이 되었다 - 대왕오징어의 기습

<386 DX-Ⅱ>에 대해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이 필요 없다는 생각도 들고, 아주 많은 말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저절로 버려졌다. 언제 어느 때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삶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 갑을고시원 체류기


처음엔 신선하다고 생각했고,
중간엔 허세부린다고 생각했고,
막판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나 신선했고,
중간엔 지나치게 있어보이려는 느낌의 문장들이라고 생각했고,
막판엔 통찰(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에 가까운,
아 그래 맞네-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그의 심안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열 편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신선한 허세의 대단함에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 조금씩 자주 찾아온,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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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다. 낯선 곳이었다. 벌떡 일어나 바지만 꿰어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처음 보는 개가 짖어댔다. 신발을 찾으려 허둥대다가 부엌에서 나오는 은희를 보았다. 
우리 집이었다. 다행이다. 아직 은희는 기억에 남아있다.


#.
연쇄살인범으로 살아온 남자가,
하필이면 치매에 걸린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
자신의 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연쇄살인범(심증100%) 때문에
고군분투 하는 내용.

#.
솔직히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놔서,
이거 읽고 나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다시 되돌리는 건 쉽지 않지만,
뭔가 굉장히 빠른 시간에 훅훅 읽히는 엄청난 집중력이 절로 발휘되면서도,
읽고 나서 내가 뭘 읽은건가 싶으리만큼 쉽지 않은 전개는 아마도 김영하의 매력.





TistoryM에서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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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또한 그 전염병은 유럽 각국의 문단에 온갖 사기와 기만의 종말을 알렸다. (...) 진정한 천재로 인정 받아 온 몇몇 사상가들은 아무리 위로 치솟고 싶어도 지면에 발이 들러붙어 옴짝달싹 못하는 반면, 이름도 생소한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하늘 높이 떠오르곤 했다. - 높은 곳


총 16편의 단편집.

아주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뭐가 뭔지 뒤죽박죽 되어버리는 고난도의 궤변인 것 같은데,
조금만 정신 차리고 다시 보면 꽤나 정확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는 게 놀랄 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글들이나, 이적의 지문사냥꾼 같은 느낌의,
허무맹랑한데도 논리적이어서 읽다보면 믿게 되는,
소재는 가벼운데 주제는 무거운 그런 글들.

주로 베르나르 이름 가진 사람들이 좀 상상력이 뛰어난가봐-_-

인상적인 포인트 및 특히 마음에 든 글.

1/ 여러 글에서 공통적으로 사용 되는 주인공의 이름 '피에르 굴댕'

2/ 작품 '벽을 뚫는 남자'를 소재로 다시 만들어낸 기이한 글, '내 집 담벼락 속에'

3/ 멍청하고 욕심 많은 인간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높은 곳'

4/ 그나마 한 큐에 이해하기 쉬웠던 컬트 스타일 '마지막 연주'

5/ 나의 워너비 '끝 없는 도시'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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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느낌에 충실해 결혼해야 한다는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참되고 솔직한 감정에 경의를 표한다. (...) 이런 감정들 하나하나를 다 존중한다면 일관성 있는 삶을 영위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때때로,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진정성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나갈 수가 없다. 아이들의 목을 조르고 싶다거나, 배우자의 잔에 독을 타고 싶다거나, 전구를 가는 것 때문에 싸우고서 이혼하고 싶다거나 하는, 스쳐 지나가는 충동들에 진심을 발휘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 

벤은 자신과 엘로이즈가 감정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며 하루하루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로서의 결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역시나 어렵게 말하는 남자, 알랭 드 보통 씨. 

벤이라는 한 중년 남자, 엘로이즈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그에게 일어난 일들을 
살짝살짝 에피소드 별로 다루는 것과 동시에,
부르주아가 어떻고, 낭만주의가 어떻고 하는 어려운 말들을 한참 섞어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결혼이 의미하는 바를 짚어주고 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20대 때 썼다길래 정말 뭐 이런 무서운 남자가 다 있나 싶었는데,
40대가 된 이번에는 결혼한 남자 한 명을 아주 속속들이 파헤쳐 놓았다.

결국 사랑만 믿고 결혼했다가는 무엇을 상상하듯 그 이상을 보게될 것이라는 무서운 이야기.

책 뒤편에는 '연인들'을 쓴 정이현 작가와 주고 받은 질답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걸 읽어보면 두 권의 내용이 한꺼번에 정리가 되는 나름 명쾌한 느낌.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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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연애의 초반부가 둘이 얼마나 똑같은지에 대해 열심히 감탄하며 보내는 시간이라면, 
중반부는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야금야금 깨달아가는 시간이다.
급하게 몰아닥친 태풍은 어느새 그쳤고,
그 후에는 폭풍우가 쓸고 간 해변을 서서히 수습해가야 한다.
(...)
다른 곳에서 발생해 잠시 겹쳐졌던 두 개의 포물선은 
이제 다시 제각각의 완만한 곡선을 그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허공에서 포개졌던 한 순간이 기적이 아니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알랭 드 보통이랑 같이 쓰기로 했다가 그냥 독립된 이야기 두 개를 내놓기로 했다는,
정이현씨의 사랑의 기초 시리즈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어 찾아 읽었는데,
뭔가 아주 쉽게 빨리빨리 읽히면서도 그 정도의 가벼움이 전부는 아닌,
공감가면서 씁쓸한 글이다.

여자주인공이 84년생이라 좀 더 감정이입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원래 사람들은 얘랑 나 뿐 아니라 다들, 그런 건가 보지? 싶을 정도로,
공감가는 심리 묘사가 많다.

특히 남자와 여자가 만나기 전, 각자의 성장배경이랄까,
여튼 각각의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옛날 이야기들을 조금 풀어놓는데, 
그게 마치 심리상담전문가가 적은 글 마냥 매우 관찰력이 뛰어나고 통찰력이 있어서 놀랍다.

그래, 절대 이해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대방의 행동 뒤에는,
항상 알고나면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는 거니까.


p.s.
보통씨는 또 얼마나 씁쓸한 얘기를 어렵게 적어놨을지 어여 읽어봐야겠음.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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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또 시작이다. 똑같은 일의 반복이다. 만약 비가 오지 않으면 ㅡ 지금은 오지 않는다 ㅡ 두 사람, 즉 딸의 학교 앞에 있는 사람과 그를 찾아온 사람은 정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정원에는 골드 레트리버 아가씨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ㅡ 오늘 아침엔 보지 못했다 ㅡ 있다. 두 사람은 벤치에 앉거나 ㅡ 이번엔 앉아 있다 ㅡ 있다.
(...)
만일 이곳에 와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날 괴롭히는 일이 사람들의 습관이 되고 있다면 , 나는 그들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날 더 이상 끌어들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나는 나일 뿐 그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었다고 하는 '조용한 혼돈'은,
띠지에 나와있는 영화포스터를 보고,
만약 내가 있을 때 개봉했더라면 분명히 보러갔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구입한 책.

그리고 마지막 장까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이 책이 올해의 첫 번째 책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뻤을 정도로,
완전 마음에 들었다.

책의 주인공은 부인 라라를 잃었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딸 클라우디아를 혼자 보살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어린 딸이 엄마의 죽음에 과연 어떤 방식으로 대처할 지,
그럴 때 자신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자기 자신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아무런 대책이 서지 않은 채, 
그는 무작정 딸의 학교 앞에서 하루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오히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다.

그 모든 이야기들에 얽힌 그의 심정을 위트있는 언변으로 풀어내는 독백조의 이 글은,
과연 이 이야기의 끝에, 이 남자, 자기 자신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에 대한,
무한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과 그 이후의 마무리야말로,
이 긴 이야기들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묶어내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

센스가 넘치는 이 한 편의 글에 박수를.

작가가 이태리사람이고, 글의 배경이 이태리라는 것도 이 글이 한 성격 하는 데 일조하는 듯.
영화도 꼭 찾아보고 싶다.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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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