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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내 목덜미를 만진 건 네가 술래야, 라는 뜻이 아니었다.
네가 졌어, 벌을 받아야지, 라는 뜻이었다.
나는 영원한 술래였다.
잡지 못하면 벌을 받고, 잡으면 벌을 면하는 불공평한 술래.



언니가 혼자 읽으면 진짜 무섭다고 해서,
절대 출퇴근길 전철 안에서만 읽었는데,
뭐 그렇게까지 심하게 무섭지는 않았지만,
언니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충분히 공감은 갔던 책.

문학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나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읽는 한국작가의 책이었는데,
이야기 자체는 (이야기의 배경이 꽤 예전 세대의 한국임에도 불구)
범세계적으로 읽혀도 손색 없을 만큼 세련된 편.

처음엔 주인공 이름이 자꾸 헷갈려서,
(나도 늙었나봐 ㅠㅗㅠ) 좀 적응이 안 됐는데,

누가 누군지 한 번 싹 정리하고 나니,
몰입도가 백 배 상승.

살인으로 사형을 선고당한 아버지, 그의 아들과 측근. 또 살인사건에 관계된 인물들이,
각각의 입장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형식인데,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그 말이 여실히 느껴지는 그런 내용.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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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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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라고 했던 모리타의 말을 떠올린다.
야, 모리타, 그게 아니라 인간의 최대 무기는, 오히려 웃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요새 읽는 책들이 하나같이 기대 이상으로 재밌어주시는 바람에,
지옥의 출근길을 그나마 버티고 산다.

골든슬럼버도 마찬가지.

범세계적으로 먹힐 만한 주제, 미미한 개인과 거대사회권력의 대치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 일본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는 부분들,
특히 주인공 아오야기와 그와 연루된 모든 사람들의 관계와 같은 것들을 녹여낸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

요 근래 문제상황에 빠진 주인공의 고군분투 스토리를 자꾸 접하게 되는데,
난리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센스와 기지를 잃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에 자꾸 빠져들게 된다.

영화로 이미 나와있다는데 내가 좋아하는 타케우치 요코가 나왔다니 한 번 찾아볼까 싶기도.

11.09
Posted by bb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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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 잔을 더 마시고, 인화한 사진을 다시 꼼꼼하게 살폈다.
그밖에 다른 사진들에는 이전에 내가 품었던 자의식만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섯 장을 건질 수 있었던 건
내가 피사체에 사진가의 시각을 인위적으로 들이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피사체의 얼굴에 집중하고,
그 피사체가 프레임을 결정하게 내버려두면,
모든게 제대로 굴러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와우.

정말 괜찮은 책이다.


팩트만 보면 피 튀기는 장르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우리네 인생사.


사진가의 꿈을 간직한 채 뉴욕 월스트릿의 성공한 변호사의 삶을 살던,
어찌보면 평범한 주인공이,

어쩌다 몬태나주 시골에서 발굴된 천재 사진가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살게 되었는가- 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는 주인공 일인칭시점으로 풀어나가는데,

감정묘사도 섬세하게 잘 나타나 있고,
특히 이 사람이 혼자 중얼거리는 내용이 은근 위트가 있어서,
읽다 보면 이 진지한 와중에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뉴욕 월가에서 몬태나주 작은 동네 구석으로의 배경전환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꿈꾸는 삶과 꿈을 이루어가는 삶의 현실적인 대비가,
생각할 거리를 (특히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를 또 한 차례 겪고 있는 나에게) 던져주기도 함.

사진에 대한 조예 깊어보이는 내용들도 꽤 나오는데, 읽다보면 급 출사 나가고 싶어짐.


후랑스에서 영화로 제작 중이라길래,
뭔놈의 소설들이 좀만 뭐 어쩌면 영화화래- 나중엔 코빼기도 안 보이는구만-
..이라며 비웃었는데,

알고보니 나 후랑스 있을 때 개봉한 영화였음.

어째서 인기인지 이해하기 힘든 후랑스의 인기 배우 로맹 듀리스가 주연한 영화,
'un homme qui voulait vivre sa vie' 였던 것.

예고편은 좀 재미없어 보였는데,
후랑스인이 사랑하는 로맹 듀리스니까 한 번 볼 걸 그랬어.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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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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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고백할 것은, 열여섯 살 이후로 내가 다시는 낚시를 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사는 게 그런 까닭이다. 우리네 인생에서(인간의 삶 일반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 이 나라에서의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지 못한다.

(...) 그 일을 하기 위해 실제로 보낸 시간이 당신 인생에서 차지하는 몫을 계산해보라.

그러고 나서, 면도하고, 버스로 여기저기 다니고, 기차 환승역에서 기다리고, 지저분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신문 읽느라 보낸 시간을 계산해보라.


동물농장을 읽은 지가 십여년은 된 것 같다.
1984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조지 오웰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숨쉬러 나가다'는 1939년 2차대전 발발 직전에 발간 된 소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현재를 생각하는 한 중년의 평범한 샐러리맨의 독백을 통해
전쟁 전후의 영국과 그 사회구성원, 가족과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조지오웰이 전쟁을 기점으로 급변하는 사회의 모습을,
어찌나 통찰력 있게 그려냈는지,

지금 우리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하나하나 대입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정확하고 세밀
하다.


정말이지, 이건, 놀라울 정도.


게다가 어찌보면 무거운 이 사회상을,
시니컬하면서도 위트 있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부드럽고 재밌게 풀어낼 줄 아는 센스도,
그에겐 있었다.

출근길 지옥철의 압박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준,
간만에, 흥미로운 책.


11.08
Posted by bbyong


그런 다음 흰머리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아돌프 이바르 아르비드손(Adolf Ivar Arwidsson, 1791~1858, 핀란드의 역사가이자 시인)이었다.
아르비드손이 멀리까지 들리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스웨덴 사람이나 러시아 사람이 되지 않고 핀란드인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되려는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이 등장하자마자 죽는다.

두둥실 떠오른 그의 영혼은 자유로이 공간을 넘나들면서 현세를 떠돌고,
그와 같은 처지의 다른 영혼들, 네안데르탈인이나 수백년 전의 교황, 심지어 예수님도 만나 대화를 나눈다.

사회에 현존하는 온갖 정치사회경제적 문제들에 직면해 고민하기도 하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한 할머니의 외로운 삶을 지켜보다 도와주기도 한다.

사후세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지침서 같은 이런 발상도 특이하지만,
무엇보다 시공을 초월한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직접 들려줌으로써,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문제를 꼬집으려는 작가의 마인드정말이지 특이한 책.

핀란드인으로서의 알 수 없는 자부심이 묻어나는 그런 부분들도 귀엽다.


11.05




Posted by bbyong

나는 성공한 사람들을 사랑한 적이 없다.

그들이 성공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성공의 노리개,
눈먼 자아의 노리개가 되기 때문이다.

온갖 대가를 치르고 얻는 자아는 인간의 종말이다.



한 중년 남자의 집 벽장 속에 숨어 일 년 동안 생활한 여자가 발견되었다는,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어이없는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후랑스 작가가 쓴 짧은 글.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한숨도 쉬지않고 읽어내려갈 수 있어서 좋았고,
짧은 팩트만을 가지고 이만큼 사람의 내면을 이야기 하고, 서사를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잔잔한 일본영화처럼 이미지가 살아나는 텍스트.
그런데 후랑스 사람이 썼다는 게 아이러니.

11.04


Posted by bbyong

우리는 모두 혼자야, 앙투안.
여기에서건 파리에서건, 아니 어디에서건 말이야.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뭐든 하지.
그래서 이사도 하고 어떻게든 고독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거야.

그건 변하지 않아.



지난 여름,
이 소설이 원작인 영화, 마이 프렌즈, 마이 러브를 재밌게 봐서 고민할 것 없이 집어든 책인데,
다 읽는동안 2010년이 되었다.

보통은 책이 영화보다 재미있게 마련인데,
영화를 먼저 봐서 그런지 이 책은 그냥 그랬다.

이야기 전개가 왠지 산만하고,
이 두 친구의 우정이 어떤 것인지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달까.

그래도 이본의 이야기가 심화된 점이나,
에냐라는 새로운 인물을 만날 수 있었던 점은 매력적이었다.


영화 적극 추천.


10.03

Posted by bbyong


물론 소수집단도 우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자유주의자의 히스테릭한 모습은 아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유주의자의 생각에 빠지면,
흑인과 스웨덴 사람 사이에 아무 차이도 볼 수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됩니다... ... .

(...)

우리는 소수집단이 보고 행동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소수집단의 결함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수집단을 좋아하지 않거나 미워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가짜 자유주의 감상주의로 우리 감정을 속이는 것보다 낫습니다.



디자이너 톰 포드가 감독하고 콜린 퍼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의 원작이,
200여페이지 남짓하는 작고 가벼운 책 한 권이라는 사실에 혹 하기도 했고,
한 글자 한 글자 모여들며 시작하는 첫 문장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 집어들었는데,

이렇게 작은 책을 오래 잡고 있기도 힘들겠다 싶을만큼 질질 끌고 말았다.

그리고 겨우 다 읽었을 때 즈음엔,
하필이면 숀 펜의 밀크를 보고 난 여운이 아직 마음 속에 남아있을 때라,
억지로 이 책을 이해하는 척 하게 되었지만,

사실 난 그냥 그랬음.
오히려 옮긴이의 말에서 감동을 좀 받았달까.


대체 일어나는 사건이라고는,
학교에서, 병원에서, 친구의 집에서, 자기 집에서 마주하는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 정도이고,
이야기의 98%가 주인공 의식의 흐름을 쫓아 흘러갈 뿐인데,

대체 이 책을 영화로 만들 땐,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집어냈을까.


먹먹한 그 기분은 생각보다 별로.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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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byong


공유된 경험이라는 기초 위에서 친밀성은 자라날 기회를 얻는다.
그저 이따금씩 식사를 함께 하면서 생긴 우정은
결코 여행이나 대학에서 형성된 우정의 깊이를 따라갈 수 없다.

정글에서 사자에 놀란 사람들은,
사자에게 잡아먹히지만 않는다면,
그들이 본 것에 의해 단단히 결속 될 것이다.

(...)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갑자기 깔깔대는 모습을 보고 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라이트모티프의 핵심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기초가 되는 장면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계속 참조하는 사건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기 참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행동이
옆줄에 선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캐치아이의 바이블 '우리는 사랑일까'의 저자,
보통이 아닌 남자, 알랭 드 보통이 무려 약 25세에 저술했다는 이 책은,

한 커플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다룸과 동시에 굉장히 철학적이자 객관적으로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가끔씩 매우 자주,
여자보다도 더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은 그의 통찰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09.10






Posted by bbyong


그 순간 파프는 파프 가설이 거부할 수 없을 만치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은 두려움을 야기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를 잃을까봐 더 두려워진다는 것을.

(...)

그때 파프는 '파프 가설'보다는 덜 우아하지만 똑같이 진실한 '파프 추론'을 발견했다.
사랑 없이 산다는 것은 수염에 너절한 것들을 달고 다니는 거라는 것을.

라스 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 by 조지 손더스, 일러스트 by 줄리엣 보다


닉 혼비에 대한 나의 맹신으로 구입하고 바로 다 읽어버림.

11명의 작가와 11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뭔가 부조리극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글들을 일러스트와 매칭한,
어른동화집 같은 그런 책.

물론 여기 모든 글을 다 좋아할 필요도, 다 좋아할 수도 없었다는 건 미리 고백.


09.08.
Posted by bbyong